영천댐
영천에서 국도를 따라 포항방면으로 5분쯤 가다보면 왼쪽으로 뚫린 지방도로가 있다. 이 길을 따라 20분쯤 가면 눈 앞이 탁 트이는 바다 같은 영천댐이 보인다. 댐의 높이는 42m, 제방의 길이는 300m이고, 총 저수량은 9,640만톤으로 1974년에 착공해서 1980년에 준공되었으며, 포항과 영천의 식수와 공업용수로 활용하고 있다. 이 댐의 건설로 자양면의 6개 법정동이 수몰되기도 했
주요 정보
지번주소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포은로 1792 (영천댐관리소) | ||
전화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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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관광지 3개
주변 캠핑장 5개
영천시 공예촌은 경북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잔디 사이트가 총 50개로 구성되어 있고, 전기,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별밤글램핑은 경북 영천시 임고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화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전기, 온수, 장작판매, Wi-Fi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별밤 글램핑은 경북 영천시 임고면 평천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기, 온수,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과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운주산 승마자연휴양림은 경북 영천시 임고면 황강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자체/개인휴양림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데크 사이트가 총 10개로 구성되어 있고, 화장실, 샤워실, 취사장 등의 편의시설과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별무리는 경북 영천시 화북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온라인실시간예약방식으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파쇄석 사이트가 구성되어 있고, 전기, 온수, 장작판매, Wi-Fi 등의 편의시설과 운동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운주산승마자연휴양림, 3.5km
주소 : 경북 영천시 임고면 승마휴양림길 105
운주산 승마자연휴양림은 별의 수도 별의 도시인 천혜의 청정지역 경상북도 영천시에 위치하고 있다. 산림욕과 승마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승마자연휴양림으로 73ha(733,932㎡)면적의 울창한 리기다 소나무 숲 속에 아름답게 꾸며진 휴양림은 숲속의 집, 다목적구장, 숲속놀이터, 산책로, 수변관찰데크, 주말농장, 야외 물놀이장 등의 휴양림지구와, 실내·외승마장, 산악승마로, 외승로 등의 다양한 승마체험을 할 수 있는 승마체험지구로 구성되어 산림휴양과 레저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또한, 휴양림 인근에는 포은 정몽주 선생의 탄생지이며 선생을 모신 임고서원, 영천댐, 동양최대의 보현산천문대, 천문과학관 보현산 일대에 조성된 웰빙숲과 영천댐 하류에 조성된 강변공원 등이 위치해 있어 가족들의 주말 나들이 장소로 매우 각광 받고 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운주산 승마자연휴양림은 별의 수도 별의 도시인 천혜의 청정지역 경상북도 영천시에 위치하고 있다. 산림욕과 승마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승마자연휴양림으로 73ha(733,932㎡)면적의 울창한 리기다 소나무 숲 속...
용계서원, 3.5km
주소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원각길 49-6 (용산리)
정조 6년(1782) 왕명으로 건립된 이곳은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생육신의 한 사람인 경은 이맹전 선생의 학덕과 충의를 추모하기 위하여 토곡동에 세워졌다. 경은 이맹전 선생은 세종9년(1427)찬시문과에 급제, 승문원정자를 거쳐 정언, 거창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의 왕위를 탐내자 벼슬을 사퇴하고 선산에 내려가 학문을 닦으며 일생을 보냈다. 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이 건물은 고종5년(1868)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노항동으로 옮겨 서당으로 사용되다가 1976년 7월 영천댐 건설공사로 인하여 현위치로 옮겨진 익공계형식으로 건축된 누각식의 팔작지붕이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정조 6년(1782) 왕명으로 건립된 이곳은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생육신의 한 사람인 경은 이맹전 선생의 학덕과 충의를 추모하기 위하여 토곡동에 세워졌다. 경은 이맹전 선생은 세종9년(1427)찬시문과에 급제, 승문...
완귀정, 5.6km
주소 : 경북 영천시 임고면 고천리 245외 5필
완귀정은 조선 중종(1506~1544)때의 학자이며 시강원 사서설서(司書說書)를 역임한 완귀 인종이 등극(登極)한 지 1년도 못되어 승하하자 스스로 사직하고 낙향하여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치던 곳으로 명종 원년(1546) 전립되었다. 완귀정은 숙종21년(1695) 성재 안후정(安后靜)이 중수하였고, 식호와(式好窩)는 영조 40년(1764) 후손들이 세웠다고 한다. 정침(正寢)은 안채에 해당되며 완귀정은 사랑채로서 전면은 단층으로 되었으나, 후면은 누사(樓舍)로 호계천(虎溪川)을 향하여 누(樓)를 두었고, 기둥머리는 익공(翼工)으로 장식하였다. 식호와(式好窩)는 좌·우에 누를 두었는데, 그 꾸밈을 달리하여 계절에 따라 선택하여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소박하게 꾸민 선비의 집으로 지방적인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 수량 - 2.159㎡ * 소유자 - 고천서원 * 안증(安? 1494~1533) 안증은 남원부사를 역임한 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호는 완구(玩龜)이며 아버지가 김종직의 문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처음부터 벼슬에는 뜻이 없고 학문에만 심취하여 성리학의 이론을 깊이 터득하였다. 후일에는 성리학의 이론이 실지 생활과는 유리되는 점이 많음을 지적하고 실학사상에 심취하였다. 1540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형조좌랑을 거쳐 세자 시강원 사서설서(司書設書)가 되었다. 이때부터 후일 인종이 된 세자에게 학문보다는 정치문제에 큰 비중을 두고 강론하였다. 그러나 인종이 승하하자 모든 백성은 빈상의 관계없이 엄격한 평등을 지향하는 민본사상을 주창한 그의 이상은 무산되었으며, 또한 을사사화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현장을 목격하고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나 평소 보아둔 영천으로 내려와 평생을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완귀정은 조선 중종(1506~1544)때의 학자이며 시강원 사서설서(司書說書)를 역임한 완귀 인종이 등극(登極)한 지 1년도 못되어 승하하자 스스로 사직하고 낙향하여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치던 곳으로 명종 ...